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549

「 행복의 표정 」 김명옥

행복의 표정 김명옥 한파 주의보에 수도관이 얼고 때가 탄 관절마저 얼어붙는 날 기억의 팔짱을 끼고 더디게 걸으며 나를 키운 시간들을 되감아 보다가 생의 교과서를 펼치러 나간다 과일가게 귤과 사과는 이불을 덮고도 발발 떠는데 만두가게 앞에 걸린 솥에서 여전히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빈대떡 아주머니는 여전히 철판 위에 빈대떡을 뒤집고 땅콩 볶는 기계도 여전히 돌아가는 날 시장 모퉁이 천 원에 두 개 붕어빵을 먹으며 종일 밖에서 추울 텐데 비닐이라도 치시지 했더니 내 건물도 아닌데 비닐은 무슨 비닐 난 안 추운데 언니들이 더 걱정해 그 맛에 살지만 봄 햇살처럼 환한 아주머니 표정 웃음을 쟁여놓고 사시나 보다 거친 생애도 따뜻하게 녹여내는 행복의 표정 붕어빵 속 단팥도 오늘따라 더욱 뜨겁다 . . . #행복의표정..

「검은뼈」 김명옥

검은 뼈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운데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 대추가 주전자 속에서 졸아 들던 겨울 건강검진에서 골다공증 판결을 받았다 건강한 생존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뼈아픈 판결 남을 먹여 살린 흔적인 벌레 먹은 나뭇잎이 예쁘다고 이생진 시인 님은 쓰셨는데 자식들에게 뼈를 우려 먹인 검고 가벼운 나의 뼈도 예쁠 수 있을까 검고 가벼운 뼈들이 풍경소리를 내는 날이면 퇴화된 날개뼈를 펄럭이며 노약자석을 기웃거린다 *부모은중경 중에서 . . .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지났습니다. 그간 자가격리를 끝냈고 침구류 세탁에 소독에... 오늘은 기운 내라고 고기도 사줘서 먹었습니다. 격리기간 동안 넷플릭스만 뒤지다가 김창옥 TV 유튜브 영상을 티브이로 줄곧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좀 웃기고 재..

동지(冬蜘)

동지(冬蜘) 김명옥 夜之半(야지반) *같은 시 한 편 품지 못하고 밤은 냉동된다 겨우살이 준비라고 마음에 문풍지 덧댓겠다 쫄깃한 새알 동동 팥 죽 한 그릇이면 족하련만 어쩐 일로 그대 야속해지는 밤 식어가는 손난로 같은 사람아 *夜之半 황진이 詩 . . . 夜之半(야지반) 截取冬之夜半强(절취동지야반강)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春風被裏屈幡藏(춘풍피리굴번장)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有燈無月郞來夕(유등무월랑래석) 사랑하는 님 오시는 날 밤 曲曲鋪舒寸寸長(곡곡포서촌촌장) 굽이굽이 펴리라 黃眞伊 . . 팥죽들 드셨지요? 저는 동네 재래시장에서 한 그릇 후딱 사다 먹었네요. 가족들은 팥죽을 좋아하지 않으니... 오늘도 추운데 내일은 더 춥다고 합니다. 마음만은 후끈후끈 하시길요. 미리 크..

「겨울 모기」김명옥

겨울 모기 착륙하는 순간 사망이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요리조리 비행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붙어있는 가녀린 목숨 옷장 속에서 추위에 떨다가 배고픔에 나간 야간비행 잠결에 휘두르는 전기 모기채에 가족들 비명횡사 했었지 조심조심 빨대 꼽자마자 바로 서치라이트가 켜지는 이곳은 아우슈비츠 머무는 곳이 지옥이라 하면서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라고 있었나 생의 끄트머리에서 투신할 곳도 찾지 못한 채 옷장 속에서 고독사 하려나 봄이 되어서야 발견되려나 . . . 밤에 모기 없으신가요? 저는 온몸을 이불로 칭칭 감고 잤더니 뺨에 빨대 꼽은 지독한 녀석이 시 한 편 놓고 가네요. . . . 더 많은 둥이 영상 https://youtube.com/channel/UCh3WDRZSP8XnYRmaZFq5g7g #겨울모기 #..

「 바디필로우에게」 김명옥

바디필로우*에게 플라타너스 한 잎에 비스듬히 누운 집 전기장판 스위치 올리고 바스러지듯 몸져눕는 밤 전생에서 감춰 온 늑골 하나였을까 끌어안으면 말이라도 건넬 것 같아 삶의 근육 더 이상 손실되기 전에 시린 손바닥을 비벼 시간의 스위치를 내려줘 이승의 저주를 풀고 깨지 않을 꿈속에 장기 투숙하게 해 줘 우주를 쏘다니던 별들이 숫눈길을 걸어와 나를 깨울 때까지 *잘 때 편한 자세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긴 베개 . . . 서울대의 가을을 만끽한 날의 스케치 입니다. 규장각을 비롯 여러 전시를 둘러보았네요. 간단히 소개합니다. 자세한 것은 검색이 빠르니까요. #규장각 #서울대학교박물관 #붓을물들이다 #관악사문자동행전 오늘은 둥이네 집을 못본 척 그냥 지나가면 둥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고 작전을 짰는데 ..

「 지친 나를 달래주는 」김명옥

지친 나를 달래주는 '지친 나를 달래주는브람스 안마의자' 작업할 때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내보내는 광고 지친 나를 달래 주는 것은 가족도 친구도 사랑도 아닌 안마의자라고 가스라이팅* 한다 극사실주의 그림 속에서 수없이 환생했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생의 변이 바이러스 저녁은 서둘러 오는데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세월이 뻗어나간 뿌리 끝에서 벽에 붙은 지도마저 흐릿해지는데 어디쯤 놓여있기에 찾지 못한 지친 나를 달래 줄 의자 같은 사람 뒤늦은 생의 시장기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 . . #시인김명옥 #지친나를달래주는

「된장찌개가 끓는 아침 」김명옥

된장찌개가 끓는 아침 김명옥 지인의 텃밭에서 뜯은 배추 겉잎을 데쳐서 썰고 표고버섯과 멸치로 육수를 낸 뒤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인다 청양고추와 파를 썰어 넣고 간을 보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왈츠 된장찌개 냄새와 음악이 손잡고 느릿느릿 왈츠를 춘다 삼시세끼 가정식 백반 차려낼 일도 없고 현관에서 준비물을 독촉하는 아이들도 없는 아침 내 마음도 허공을 손잡고 왈츠를 춘다 빗소리는 창가에서 토닥이는데 이것이 신이 내게 허락한 최대한의 행복 . . . #텃밭 #농활 #시인김명옥

「선운사 꽃무릇」김명옥

선운사 꽃무릇 * 김명옥 꽃대궁 끝에 붉은 경전 걸어놓고 하늘 올려다보면 눈에 밟히는 잃어버린 전설 그리움의 불길 번져가는데 모든 걸 걸어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눈시울 붉히며 뒤척이는 밤 도솔암 독경 소리에 꽃 그림자 허물어지고 눈물 훔치며 삼켜버린 시간만 그리움에 떨고 있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 . . 2-3년 코로나로 멈추었던 탐사회에서 스타트로 고창에 다녀왔습니다. 출발 할 때 비가 많이 왔는데 고창은 무더위가 한참 이었습니다. 사진을 정리하며 보니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쏘여서 조금은 들떳던 것 같네요. ㅎㅎ 행복했던 순간을 갈무리 해 봅니다. #선운사꽃무릇 #애고도솔천아 #정태춘 https://youtu.be/fWQBGjovets

「 뒤늦은 행복 」김명옥

뒤늦은 행복 김명옥 요플레에 블루베리 몇 알 넣으며 아침을 맞는다 식물 등에 불을 켜주고 고무나무 여린 새순과 눈을 맞추고 느긋하게 스트레칭하는 맨발의 아침이 고맙다 병원에 문병 갈 일도 없고 우편함에 독촉장도 없다 머리맡에 시집이 쌓여있고 냉장고에 사과 당근이 남아 있다 가까운 벗을 불러 청국장에 돼지불고기 맛볼 수도 있는 하루 오라는 곳 없고 갈 곳도 없는 자유 터벅터벅 슬리퍼 신고 남성시장 골목길 냉면집에서 혼자 비냉을 먹어도 아무 꺼리낌 없는 자유 원하는 게 다른 사람에게 묶이지 않고 꿈꾸는 사람 없는 뒤늦은 행복 여행에 가장 좋은 동행은 바로 나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야지 . . . 한가위 달 보고 소원 비셨나요~ 어제 테라스에서 딸이 소리치네요. '추석날 달이 안보여 소원 못 빌었는데 오늘 ..

「 한물간 시 」김명옥

한물간 시 한물간 화분에 봉숭아 씨앗 던져 놓았더니 울퉁불퉁 새순이 고개 내밀고 푸릇푸릇 키를 키우더니 송이송이 붉은 꽃 시처럼 피어난다 시의 잎과 꽃을 빻아 오래 묵은 폐사지 같은 가슴에 올려본다 이 밤 자고 나면 손끝마다 시의 핏물 베어 들까 한물간 나의 시도 붉게 붉게 꽃물 들었으면 . . . 하늘은 높고 푸르르고 바람은 한결 시원해졌네요. 이렇게 여름도 떠나 가려나 봅니다. 이 때 쯤 생각나는 곡이 있네요. #한물간 시 #김명옥시인 August October / Robin Gibb 한가 하실 때 들어 보세요. https://youtu.be/uIeJBAmWfUM 스토리 https://story.kakao.com/kmogold/61ERzw41s39 #RobinGibb #봉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