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시인 물의 집을 허물 때 길상호 몇 개 상처를 정강이에 새기며 오래오래 걸은 후에야 집 하나 겨우 얻었습니다 발바닥 굳은살 속에 동그랗게 자리 잡은 아픈 물방울의 집 한 채, 지문 훤히 비치는 문을 열고 거기 뜨거운 방 안으로 물고기 한 마리 들이고 싶었습니다 상한 지느러미로 물살 가르.. 생을 그리는 작업실/caricature 2017.12.06
안도현 시인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생을 그리는 작업실/caricature 2017.11.02
우정연 시인 『송광사 가는 길 』 송광사 가는 길 가을 햇살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휘어진 산길을 힘껏 끌어당긴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팽팽한 틈새에서 저러다 딱, 부러지면 어쩌나 더 이상 갈 길을 못 찾고 조마조마하던 차에 들녘을 알짱대던 참새 떼가 그걸 눈치챘는지 익어가는 벼와 벼 사이를 옮겨 다니며 햇살의 시.. 생을 그리는 작업실/caricature 2016.07.01
이재무 시인 「좋겠다, 마량에가면 」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달 소꼽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 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환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장단에 철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 쓰는, 갯벌 같.. 생을 그리는 작업실/caricature 201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