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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모래의 책」부분
내 앞에 놓인 백지가 넓어지고
잘못 조판된 글자처럼, 나는 이곳에 왔다 그건 그날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우연한 일
이것은 소멸에 대한 이야기
나는 입구였다 줄지어 내게로 달려 들어온 것들이
뒤엉킨 자리에서, 진지하게 거짓말할 줄 알았다
너도나도 슬퍼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땀을 흘리지 않았다
손이 차가워졌다
낯선 그림자와 악수하며 나는 네 번째 온 사람, 봉투처럼 밀봉되어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랐다 여섯 번째의 노인이거나
아흔 두 번째의 양일 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다시 나를 반죽해 펼쳐놓았다
모든 계절이 추웠다
바람을 사전에서 지우고 호주머니가 깊어졌네
나를 향해 백지가 더 넓어지고, 비틀거리면서
나는 왔네, 물을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네
좁고 어두운 이마는 나의 몇 번째 밤인지
언제까지나 나는 입구였네
안개 속에서
짐승의 소리를 듣고 술렁거리는
숲 속에서, 나의 그림자 속에서
이 모든 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불 속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검은 재가 되었고
백지 위에서
나는 뛰어내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아프기 시작했다.
詩 김지녀
.
.
.
내 앞에 놓인 백지가 넓어지고
잘못 조판된 글자처럼, 나는 이곳에 왔다 그건 그날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우연한 일
이것은 소멸에 대한 이야기...
여름이 주춤거리는 동안
백지 위에서 종횡으로 움직였다.
위험한 생의 갱도에서
의외로 많은 난독
뜻 밖의 난청에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온갖 치痴로
어깨띠를 두르고
무조건 긍정하기 였었는데...
어쩌다가 몇 개의, 소위 공모전 이란 곳에 그림을 들이밀어 넣었다.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받아 들여져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내 앞에 놓인 백지가 더 넓어지고, 비틀거리겠지만
핏빛 아바타를 백지 위에 새겨 넣어야겠지
선무당 작두 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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