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처럼 눕다 풀잎에 한 여자를 빗댄 적이 있었지
아무도 지나치지 않는 새벽이었어
골목길에 접어드는데 내게 휘청하며 몸을 기댄 그런 풀잎 말이지
거기에도 길이 있고 여관이 있고 폐허가 있었어
그녀를 한 번 건드리면 그 세상 다 쏟아졌을 거야
나는 조심조심 골목길을 돌아나왔네
가령 먼지처럼 쓸쓸한 날에는 그 풀잎이 생각나곤 해
가볍게 가볍게 그 여자 위에 앉고 싶었지
더럽히고 싶었어 둥글고 푸른 등허리를 내가 보아버렸던가?
골목은 돌아가도 돌아가도 끝이 없고
풀들은 나를 전송하며 길가에서 손을 흔들었다네
지금도 골목을 돌아가면 그녀가 길 끝에서 나를 기다릴 것 같아
푸른 옷소매가 가끔 꿈에서 보여 나도 풀잎처럼 가만히 눕고 싶었어
그러면 그녀는 제 몸의 무늬를 보여주겠지
그 무늬 속에 숨고 싶었어 그래 맞아,
나는 물그림으로 된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네
풀잎처럼 눕다 / 권혁웅
'여행자를 위한 서시 > Wayfaring Strang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천 가야산 소리길, 최치원의 둔세지 농산정, 해인사 (0) | 2012.06.16 |
---|---|
대관령 휴양림,안반데기 마을, 정선 (1) | 2012.06.11 |
의성 작약꽃과 산운마을의 옛집 (0) | 2012.05.21 |
성주사지,만수산 무량사,칠갑산 장곡사,봉수산 봉수사 (0) | 2012.04.29 |
쌍계사 10리 벚꽃길 , 화개장터 (0) | 2012.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