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2016 ~! 다시 먹칠을 하며

무디따 2016. 6. 9. 15:59








먹칠을 하며


냉장고에  시름인 듯 주저앉은 찬통을  식탁 위에 늘어놓고
헛구역질하듯  젓가락질을 하다보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 시가
어렴픗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아차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반백을 붓질하고 있다.
시간 속에 나부끼는 고립된 존재로서
한계가 있는 삶의 비극성이 온몸을 잠식할 즈음, 시작한 먹장난

인체의 신비를 감지하는 즐거움,

 존재에 대한 통찰 도구로서 크로키만 한 것도 없다.
짧은 시간에 먹이를 낚아채는 짐승의 본능으로
한 순간도 머무름 없이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게 맛이다.
잠시라도 멈칫하는 찰나에는 화선지가 먹탕이 되어버리니..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순 명쾌하게 대상을 드러내되
인체 외곽선 단순 재현이 아닌 존재의 파동까지 캡쳐해

 나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팠지만
1년 8개월을 넘기도록 극히 제한 적 포즈만을 보여주는 모델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손끝 간 괴리는 메워지지 않는다.
한 생애가 구축해 온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내부의 울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모델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 부터도 한 때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을 경시 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은 스스로  미치광이임을   자처하는 것과 진배 없는데
그 누가 백척간두에 서서 진 일 보 하는 것만큼 위태로운 작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투시 카메라 같은 혜안이 생기지 않을 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먹칠한다.

말로만 투필성자를 꿈 꾸면서...

 

 

2010.8.6 크로키 휴가 날에...

.

.

.


인사동 화실 오프닝 축하겸 송년회겸 인사동으로 크로키하러 오랜다.

3절 스케치북을 바랑처럼 둘러메고

안국역에 내리니 싸락눈 같은 눈이 내린다.

이는 분명 서설(瑞雪)이리라....

작은 방에 모델이 한 쪽 구석으로 포즈를 잡고 화우들도 구석 구석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안 교수님은 아예  바닥에 스트로플 깔고 좌정하신다...

참 잘했어요~~ 샘의 믿거나 말거나 강평에 눈멀고 귀멀어서 크로키 랍시고 하다보니

오늘 크로키가 101번 째 크로키가 되었다.

무엇이나 열심히하거나, 올인하지 못하는 습성으로  작업도 놀멘놀멘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오래 지속적으로 한 곳에 자리하는 비결이 되기도한다.

한결같이  신참으로만 남아있어 부끄러운 작업이지만

잘 하겠다는 마음의 부담도 없이 내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 나는 싫지않다.

무소유란 이름대로 학연,지연,소속도 없이

독고다이로 멋대로 상상하고 그려대는 그림....

 

그것이 내게는 부칠 곳 없는 한 사람의 꿈일지라도

새해에도 잘 해 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2011.12.28

.

.

.



2016 ~! 다시 먹칠을 하며

3년 간 손을 쉬었더니 맘 따로 손 따로

언젠 맘처럼 손이 따라주었나...

그냥 하는거지






'생을 그리는 작업실 > Nude Croqu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 한 사발  (0) 2016.07.21
그 사내   (0) 2016.07.14
무엇이 지나가는가  (0) 2013.05.30
마음의 빈집   (0) 2013.05.14
믿음에 대하여  (0) 201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