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믿음에 대하여

무디따 2013. 5. 6. 13:51

 

 

 

한지에 먹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피가 날 때까지 믿는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으로 걸어오는 반토막짜리 사랑도 믿는다.

고장난 뻐꾸기 시계가 4시에 정오를 알렸다.

그녀는 뻐꾸기를 믿는다.

뻐꾸기 울음과 정오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먹먹하게 가는 귀 먹은

그녀의 믿음 끝에 어떤 것도 들여놓지 못한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는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 든다.

 

 

 

詩 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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