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조실처럼 밝은 불빛 아래 누더기生을 끌어안고
기차의 진동에 단체로 흔들리며 나는 또 서울로 간다
반수면 상태로 눈을 붙이면 내장 속 같은 삶의 얼굴이
빈 병 부딪치는 소리에 섞이면서 알맞게 반죽된다
창밖의 풍경은 뿔뿔이 도망가고 배경 음악도 배제된 기차는
일요일 낮 시간에 재방되는 드라마의 속내처럼 한김 나간 채
강원도의 한 단락을 넘어 경기도로 입성한다
시간을 축내기 위해 보았던 외설과 서스펜스가 뒤섞인 비디오
그렇고 그런 영화지만 감독 없는 인생보다 몇 배 구체적이었다
묵은 잡지에 묻어 있던 시 한 줄이 자존심을 폐기하고
차창에 어른거리며 주인을 찾고 있다
기차가 끌고 가는 밤이 너무 길고 깊어
생은 서사적으로 코를 곤다
청량리역에 접근하자 방금 농성을 해제한 걸인들 몇이
광장의 한쪽 변방에서 습관처럼 별을 마중하고 섰다
저승에도 마중하는 이가 있을까
이 쓸데없는 집착!
나는 죽어 30초면 잊혀지자
황홀한 사라짐도 빛나는 詩
선선히 늙어가시라 스텐바이
큐
詩 박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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