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경남 산청 탐매 [探梅] 기행

무디따 2011. 3. 21. 21:45

 

 

 

 

 

 

 

 

 

 

 

 

 

 

 

 

 

 

 

 

 

 

 

 

매화의 꿈

 

  뜻밖에 열흘 내지 닷새 정도의 여가를 얻어 깊은 방 그윽한 난간에 향을 피우고 홀로 앉아 소장하고 있는 거울, 벼루, 거문고, 칼, 금석, 서화 등을 꺼내, 하나 하나 뒤지며 완상하였다. 오래된 질그릇 술잔으로 단사(丹砂)가 수놓은 무늬처럼 침식되어 있는 것을 찾아내어 홍로주(紅露酒)를 따라 마시니 얼큰한 게 금방 취기가 올랐다. 이에 매화를 그려 크게 펼쳐놓으니 마치 소동파의 ‘대강동거(大江東去)’를 철작동판(鐵綽銅版)에 맞추어 창하는 듯하였다. 그림을 다 끝낸 저녁,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났는데,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고, 풍신(風神)이 빼어나 세속의 그림에 보이는 장도릉(張道陵) 같았다. 도사가 나에게 읍하면서 말했다.

 

 “나부산(羅浮山)에서 산 지 오백 년 동안 만 그루의 매화를 심었소.

그 중 돌난간 옆 세 번 째 매화가 가장 기굴(奇堀)하여 여러 매화 중 으뜸이었는데,

어느날 저녁 비바람에 휘말려 그 간 곳을 알 수 없었소.

어찌 뜻하였으랴?

그대의 붓 끝에 끌려왔을 줄을.

원컨대 매화나무 아래에서 사흘만 자고 가리다.”

이어 벽에 시 한 수를 적어놓았다.


    

구름 뜻은 바다를 알지 못하고

    봄빛은 산등성이에 오르고자 하네.

    인간 세상에 한번 떨어져 천겁을 지냈는데,

    아직도 매화를 사랑해 돌아가지 못한다네.


  

글자의 획이 기고(奇古)하여 인간 세상의 글씨와는 달랐다.

 다 쓰고나서 길게 읊조리는데, 그 소리가 숲을 진동하였다.

놀라 깨어보니 등불은 푸르스럼하게 흔들리고,

대나무 그림자가 마루에 가득하였다.

 

 

-조희룡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畫雜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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