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oil painting

김명옥 개인전 2020년 11월 9일 ~20 일 서울시의회 갤러리 1

무디따 2020. 11. 14. 16:10

 

 

행복한 산책 - 작가노트


가족들이 각자 제자리 찾아 간 아침

가을볕에 바스락하게 마른빨래를 걷으며 생각한다

삼호가든에서 30년

아들 유모차 밀고 두 딸 걸려서 장 보러 다니던

그때가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아니다,

욱신 거리는 몸에 파스 한 장을 덮어 놓고

물감을 칠갑하며 붓질하다가

시의 숨결에 밤새 귀 기울이고

아이들 떼어 놓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한 순간이라고

 

아니, 아니다,

남의 길만 곁눈질하느라

생의 종균 속에 살아 숨 쉬는 기쁨이라는 기적을 놓쳤었다

사무친 이름 하나 없이 퉁퉁 불은 기억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심장이 뛰고 있는 순간,

긴 숨을 내쉬는 쉬는 순간

아무리 사소한 순간일지라도

마음의 붓을 내려놓고

존재와 존재가 서로에게 반짝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너덜길이거나 자드락길이거나 에움길이나 벼룻길이라 할지 라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길은 없다

저물녘 쓸쓸함의 문을 밀고 나선 산책길이라 할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