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그림판 누드크로키 시즌 2

무디따 2019. 3. 3. 15:35














내가 만난 모든 슬픔을

나는 좁고 면밀한 눈으로 잰다네.

그것이 내 것만큼 무게가 나가는지

아니면, 더 수월한 크기인지, 나는 궁금하다네.


그것들이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금방 시작된 것인지, 나는 궁금하다네.

나는 내 슬픔의 날짜를 말할 수는 없다네.

그것은 너무나 오랜 고통 같기에,


 

그들이 살기 위해서 아픔을 주는 건지

그들이 그래야만 하는 건지, 나는 궁금하다네.

설혹, 그들이 그 중간을 택한다 해도

죽기 위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들 몇몇이 오래가졌던 참을성을 버리는 걸

마침내 그들의 미소를 다시 찾는 걸,

아주 약간의 기름을 갖고 불타는

빛의 모조품이 되는 걸, 나는 눈 여겨 본다네.


 일찍이 그들을 아프게 했던 손상 위에

세월이 수천 년의 세월을 또 쌓으면

그런 시간의 흐름이 그들에게

향유를 주는 건지, 나는 궁금하다네.


 아니면, 그들이 신경의 수 세기를 관통하며

여전히 계속해서 아픈 건지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더 큰 고통에게 빛을 발하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네.


 슬픈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네.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고

죽음이 바로 그 중 하나인데, 그것은 단 한 번 와서

단지 눈에 못을 박을 뿐이라네.


 결핍으로 인한 슬픔, 추위로 인한 슬픔도 있다네.

그들은 ‘절망’의 종류로 부른다네.

그 지역 토박이의 대세에 밀려

그들의 눈으로부터 추방당한 슬픔도 있다네.


 비록 내가 그게 어떤 종류의 슬픔인지

정확히 추측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지나가는 예수, 그리스도 수난상들에게서도

가슴 아픈 위안 같은 슬픔이 생긴다네.


 십자가의 형상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대개는 어찌나 낡았는지

어떤 이들이 나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어찌나 열광적인지를 지켜보면서,



내가 만난 모든 슬픔을/에밀리 디킨슨

.

.

.



거의 2년 만에 다시 그림판 누드크로키가 시작되었다

손이 풀릴만하면 크로키를 놓게되고

또 시작되고를 반복하다보니

만년초보이지만

크로키하는 순간,

몰입의 마력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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