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랴, 하늘 가득 머리 풀어 울고 우는 빗줄기, 뜨락에 와 가득히 당도하는 저녁 나절
의 저 음험한 비애(悲哀)의 어깨들 오, 어쩌랴, 나 차가운 한잔의 술로 더불어 혼자일 따
름이로다 뜨락엔 작은 나무의자(椅子) 하나, 깊이 젖고 있을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
이로다
어쩌랴, 그대도 들으시는가 귀 기울이면 내 유년(幼年)의 캄캄한 늪에서 한 마리의 이무
기는 살아남아 울도다 오, 어쩌랴, 때가 아니로다, 때가 아니로다, 때가 아니로다, 온 국
토(國土)의 벌판을 기일게 기일게 혼자서 건너가는 비에 젖은 소리의 뒷등이 보일 따름
이로다
어쩌랴, 나는 없어라 그리운 물, 설설설 끓이고 싶은 한 가마솥의 뜨거운 물, 우리네 아궁
이에 지피어지던 어머니의 불, 그 잘 마른 삭정이들, 불의 살점들 하나도 없이 오, 어쩌랴,
또다시 나 차가운 한잔의 술로 더불어 오직 혼자일 따름이로다 전재산(全財産)이로다, 비
인 집이로다,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하늘 가득 머리 풀어 빗줄기만 울고 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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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시인이 지난 28일 밤 11시5분께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했다. 향년 79세.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정진규는 안성농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뒤 10여 년 동안 교사 생활과 기업체 홍보 업무 등에 종사한 그는 시 전문지인 '현대시학' 주간,
제 31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정 시인은 1960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1960년대의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현대시' 동인에서 1967년 갑자기 탈퇴했다. 다른 동인들과 시적 이념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뒤 두 편의 글 '시의 애매함에 대하여'(1969)·'시의 정직함에 대하여'(1969)을 냈다.
정 시인은 '마른 수수깡의 평화(平和)'(1966)·'유한(有限)의 빗장'(1971)·'들판의 비인 집이로다'(1977)·'매달려 있음의 세상'(1980)·'비어 있음의 충만을 위하여'(1983)·'연필로 쓰기'(1984)·'뼈에 대하여'(1986)·'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1990)· '몸시(詩)'(1994)· '알시(詩)'(1997)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대한민국문화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이상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 발인 10월 1일 오전, 장지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선산.
02-3010-2263.
이준원 기자 ceo9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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