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약속
마음이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별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두듯 마음에 봄가을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詩 문태준
'생을 그리는 작업실 > caricature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낙필 시인 「아침」 (0) | 2015.11.25 |
---|---|
정호승 시인 (0) | 2015.11.24 |
강인한 시인「잠들기 전에 눈물이」 (0) | 2015.10.01 |
김치재 님 (0) | 2015.09.30 |
도종환 시인 「오늘밤 비 내리고」 (0) | 2015.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