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쓸쓸한 봄날 / 박정만

무디따 2015. 6. 1. 10:37

 

 

 

 

길도 없는 길 위에 주저앉아서

노방(路傍)에 피는 꽃을 바라보노니

내 생의 한나절도 저와 같아라.


한창때는 나도

열병처럼 떠도는 꽃의 화염에 젖어

내 온몸을 다 적셨더니라.

피에 젖은 꽃향기에 코를 박고

내 한몸을 다 주었더니라.


때로 바람소리 밀리는 잔솔밭에서

청옥 같은 하늘도 보았더니라.

또한 잠 없는 한 사람의 머리맡에서

한밤내 좋은 꿈도 꾸었더니라.


햇볕이 아까운 가을 양지녘에서는

풍문처럼 떠도는 그리운 시를 읽고

어쩌다 찾아온 친구에게는

속절없는 내 사랑의 말씀도 전했더니라.


이제 날 저물고

팔이 짧아 내 품에 드는 것도

부피 없고 무게 없고 다 지친 것뿐.

가슴의 애도 제물에 삭고

긴 밤의 괴로움도 제물에 축이 났어라.


이제 모질고 설운 날은 지나갔어라.

빈 집에 홀로 남은 옛날 아이는

따뜻한 오월의 어느 해 하루

툇마루를 적시는 산을 벗삼아

잔주름 풀어가는 강물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