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나주 불회사,화순 운주사, 화순 고인돌 유적지

무디따 2012. 2. 18. 22:39

 

 

 

 

 

 

 

 

 

 

 

 

 

 

 

 

 

 

 

 

 

 

 

 

 

 

 

 

 

 

 

 

 

 

 

 

 

 

 

 

 

 

 

 

 

 

 

 

 

 

 

 

 

그대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네.

그믐날  내리는 눈은

잊혀진 마을 어귀에  쌓이고

갈 곳 없는 발길 남녘으로 흘러

화순 지나 능주 지나 도암에 이르렀건만

그대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네

 

해리에서 어둔에서 마락리 고갯길에서

그대가 스치고 간 길을 찾아

얼마나 헤매였던고

저물녘 그대의 그림자를 밟아 가면

대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빠르기도 하지

그대는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물들지 않는 마음만이 홀로 쓸쓸하였으니

 

그대가 주장자를 떨치고 떠나버린 길

더러는 남녘 바닷가에서 보았다기도 하고

더러는 누항의 유곽에서 보았다기도 하고

더러는 삼수갑산 어느 산골에서 보았다기도 하지만

그림자도 없고 자취도 없는 길

구름처럼 아득하였네

 

말로도 뜻으로도 갈 수가 없네

알 수없는 능엄주의 바다처럼 막막할뿐

나의 그리움은 세월 저편

눈 그친 하늘에 홀로 솟은 9층탑처럼 외로우려니

바람부는 들길 만장처럼 펄럭이는 길을 따라

오늘밤은 만산계곡에 들 것이네

 

오호라 그대가 내 마음속에 새기고 간

알 수 없는  노래여

풀잎끝에 이슬인가 화로속의 눈발인가

하룻밤의 꿈으로는 이룰 수 없는 사랑

저 무량한 파불의 흔적으로 나뒹굴었으니 

내 마음 가득히 눈물이 흐를 때   

그대는 벌거숭이의 몸으로 미망의 끝을 보려하는가

 

천 개의 돌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은

천 개의 돌 속에 숨어 있는 상처

착할  때는 성자처럼 아름다웠고

악할  때는 비수처럼 날카로웠으니

이 겨울 바람부는 운주의  골짜기

맨사댕이로 홀로 선 얼음부처여

만산을 가득 채운 석불의 미소로도 알 수 없으려니

나 그대에게 전할 소식 한 자가 없네.

 

 

만산 계곡에서/이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