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네.
그믐날 내리는 눈은
잊혀진 마을 어귀에 쌓이고
갈 곳 없는 발길 남녘으로 흘러
화순 지나 능주 지나 도암에 이르렀건만
그대에게 가는 길이 보이지 않네
해리에서 어둔에서 마락리 고갯길에서
그대가 스치고 간 길을 찾아
얼마나 헤매였던고
저물녘 그대의 그림자를 밟아 가면
대숲을 스치는 바람처럼 빠르기도 하지
그대는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물들지 않는 마음만이 홀로 쓸쓸하였으니
그대가 주장자를 떨치고 떠나버린 길
더러는 남녘 바닷가에서 보았다기도 하고
더러는 누항의 유곽에서 보았다기도 하고
더러는 삼수갑산 어느 산골에서 보았다기도 하지만
그림자도 없고 자취도 없는 길
구름처럼 아득하였네
말로도 뜻으로도 갈 수가 없네
알 수없는 능엄주의 바다처럼 막막할뿐
나의 그리움은 세월 저편
눈 그친 하늘에 홀로 솟은 9층탑처럼 외로우려니
바람부는 들길 만장처럼 펄럭이는 길을 따라
오늘밤은 만산계곡에 들 것이네
오호라 그대가 내 마음속에 새기고 간
알 수 없는 노래여
풀잎끝에 이슬인가 화로속의 눈발인가
하룻밤의 꿈으로는 이룰 수 없는 사랑
저 무량한 파불의 흔적으로 나뒹굴었으니
내 마음 가득히 눈물이 흐를 때
그대는 벌거숭이의 몸으로 미망의 끝을 보려하는가
천 개의 돌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은
천 개의 돌 속에 숨어 있는 상처
착할 때는 성자처럼 아름다웠고
악할 때는 비수처럼 날카로웠으니
이 겨울 바람부는 운주의 골짜기
맨사댕이로 홀로 선 얼음부처여
만산을 가득 채운 석불의 미소로도 알 수 없으려니
나 그대에게 전할 소식 한 자가 없네.
만산 계곡에서/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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