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고향에는 까마귀떼가 내려와 운다.
눈쌓인 산모퉁이 보리밭 너머
모가지만 댕겅댕겅 잘려간 수수밭에는
저승길 떠난 어른들이 수런대는 것 같다.
바지가랭이가 닳도록 다녔던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서 덧없이 세월이 흘렀다.
빈 들이 설움을 토하듯
이골 저골, 차고 시린 바람이 휩쓸고 다닌다.
문을 열면 옛 이야기처럼 실개천이 흐르고
문을 열면 처마밑에 기운 달이 툇마루를 비추고
문을 열면 푸른 별들이 밤의 향기를 토해내고
문을 열면 저녁 강물을 따라서 아득해지던 길들
삼동에 무얼하는지 집마다 인기척이 없다.
펄럭이는 바람소리에 이따금 개가 짖고
얼지 말라고 틀어놓은 수돗물이
저홀로 넘치다 흐르다 날이 저물어 간다.
돋보기, 책력, 주민증, 서툰 글씨로 쓴 부조 기록장...
선친이 쓰던 물건들은 모두 깊은 잠속에 빠져 있다.
족보를 펴놓고 아득한 세월을 헤아려 보다
벙어리처럼 말을 잊고 한숨을 쉰다.
글/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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