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 pastel on paper
초롱의 불빛도 제풀에 잦아들고
어둠이 처마 밑에 제물로 깃을 치는 밤,
머언 산 뻐꾹새 울음 속을 달려와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문을 열고 내어다보면
천지는 아득한 흰 눈발로 가리워지고
보이는 건 흰눈이 흰눈으로 소리 없이 오는 소리뿐
한 마장 거리의 기원사(祈願寺) 가는 길도
산허리 중간쯤에서 빈 하늘을 감고 있다.
허공의 저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다 풀뿌리같이
저마다 더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나는 꿈마저 오지 않는 폭설에 갇혀
빈 산이 우는 소리를 저 홀로 듣고 있다.
아마도 삶이 그러하리라.
은밀한 꿈들이 순금의 등불을 켜고
어느 쓸쓸한 벌판길을 지날 때마다
그것이 비록 빈 들에 놓여 상할지라도
내 육신의 허물과 부스러기와 청춘의 저 푸른 때가
어찌 그리 따뜻하고 눈물겹지 않았더냐.
사랑이여,
그대 아직도 저승까지 가려면 멀었는가.
제 아무리 밤이 깊어도 잠은 오지 아니하고
제 아무리 잠이 깊어도 꿈은 아니 오는 밤,
그칠 새 없이 내리는 눈발은
부칠 곳 없는 한 사람의 꿈 없는 꿈을 덮노라.
詩 박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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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화실 오프닝 축하겸 송년회겸 인사동으로 크로키하러 오랜다.
3절 스케치북을 바랑처럼 둘러메고
안국역에 내리니 싸락눈 같은 눈이 내린다.
이는 분명 서설(瑞雪)이리라....
작은 방에 모델이 한 쪽 구석으로 포즈를 잡고 화우들도 구석 구석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안 교수님은 아예 바닥에 스트로플 깔고 좌정하신다...
참 잘했어요~~ 샘의 믿거나 말거나 강평에 눈멀고 귀멀어서 크로키 랍시고 하다보니
오늘 크로키가 101번 째 크로키가 되었다.
무엇이나 열심히하거나, 올인하지 못하는 습성으로 작업도 놀멘놀멘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오래 지속적으로 한 곳에 자리하는 비결이 되기도한다.
그림패는 2004년 1월 부터 나가기 시작했으니 새해들면 만 8년이다.
한결같이 신참으로만 남아있어 부끄러운 작업이지만
잘 하겠다는 마음의 부담도 없이 내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 나는 싫지않다.
무소유란 이름대로 학연,지연,소속도 없이 독고다이로 멋대로 상상하고 그려대는 그림....
그것이 내게는 부칠 곳 없는 한 사람의 꿈일지라도
새해에도 잘 해 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201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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