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뮈토스

무디따 2011. 12. 9. 00:21

 

pencil & pastel on paper

 

 

 

 

 

당신보다 더 늙은이 또 있을까

말 없는 늙은이의 품 속처럼

아늑하고 아득한 곳 또 있을까

구수한 곰팡내 나는 당신의 늑골을 베고 누우면

당신 속으로 난 무수한 계단이 보이고

주름만큼 빼곡한 서랍들이 보이네

당신보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은 당신의 빛나는 늙음이 부럽기만 하여)

난 겁도 없이 당신 가슴 속 서랍을

하나씩 빼 보는 것이네

눈 감고도 찾을 수 있는 당신의 정리벽이 놀랍기만 한데

당신의 판도라가 되어 고리를 당길 때마다

튀어 나오는 무수한 별자리들, 다 기억할 수 없는 당신의 아들 딸

괴물들의 두상과 주술, 사라진 것들의 울음, 날개의 잔해……

숱한 낮과 밤의 이야기들이

당신의 절절한 사연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네

당신 품에 안긴 내 몸 밖으로

해와 달 번갈아 뜨고 지네

계절이 순번 없이 물러섰다 다가서네

당신에게 안기는 건 당신의 한 페이지 살갗이 되는 것

어느 새 나 또한 당신의 에피소드가 되어

차곡차곡 접혀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있네

제 발로 들어가고 있네

당신의 만년설 같은 백발이 치렁치렁해지는 동안

 

詩 강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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