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기나긴 이야기/김요일

무디따 2011. 7. 18. 15:42

 

 

 

 

 

 

나는 너를 공연한다

너의 외투와 벗겨 널브러진 부츠와

혀 없는 키스와

선 밖에서 외줄 타던 시절을

 

나는 너를 상영한다

허공에서 춤추던

가느다란 팔과 다리 거미줄에 걸린

경련도 간지럼도 없던 흑백의 장면을

 

나는 너를 중계방송한다

늦은 밤 비 내리는 멕시코 국경, 빗물 섞인 맥주와

정곡을 움켜쥐고도 어쩔 줄 몰라 하던

네 손의 비애를

 

너를 녹화한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약속을

꿈밖에서 서성대던 골목길의

시린 휘파람 소리를

 

아직은 빛을 잃은 새벽이고

신의 생애를 닮아 서러운 꽃들은

열매를 달기도 전에 시들어버리지만

 

나는 너를 재생한다

가장 커다란 파편이었던 너는

주머니 속

소멸된 유효기간의 상품권처럼

버리지도 못한 채 구겨져 있지만

나는 너를 두 번 세 번 재생, 재생한다

 

웃고 또 웃고

울고 또 울던

짧은 생 속의 기나긴 이야기

.

.

.

.

.

나는 너를 재생한다

가장 커다란 파편이었던 너는

주머니 속

소멸된 유효기간의 상품권처럼

버리지도 못한 채 구겨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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