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무디따 2008. 4. 9. 23:11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에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리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리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詩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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