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지 마,
사랑이라면 이젠 신물이 넘어오려 한다.
내 잔가지들을 흔들지 마.
더이상 흔들리며 부들부들 떨다 치를 떠느니,
이젠 차라리 거꾸로 뿌리뽑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프라하에서 한 집시 여자가, 운명이야, 라고 말했었다.
운명 따윈 난 싫어,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었다.
아름다움이 빤빤하게 판치는 프라하, 그러나 그 뒤편
숨겨진 검은 마술의 뒷골목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누렁개를 옆에 끼고 땅바닥에 앉아
그녀는 내 손바닥을 읽었다.
나는 더이상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씌어진 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운명이라 말하지 마, 흔들지 마,
네 바람의 수작을 잘 알아, 두 번 속진 않아.
새해, 한겨울, 바깥 바람도 내 마음만큼 차갑진 않다.
내 차가운 내부보다 더 차가운 냉수 한 잔을
마시며, 나는 차갑게 다시 읊조린다.
흔들지 마, 바람 불지 마, 안 그러면
난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어버리겠어.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오고 가면서
내게 수상한 바람 소리들을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접시 깨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접근하면 발포함"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게 아닌,
내부를 향한 내 안의 폭탄이다.
詩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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