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 처마 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 있게 하고
눈밭을 민 히말라야소나무숲을 삼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
.
.
.
.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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