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비릿하지도 않고 덜컹거리지도 않고 갸륵하지도 않다
난데 없는 풍랑으로 몇일씩 성에 발이 묶이고
눈길에 미끄러진 애마를 시골 카센타에서 '야매'로 고치며
다시 편서풍에 몸 맡길 것이다
아무래도 난 한계령 사스래나무가 알량한 연애보다 좋고
왕피천 노을이 충무로 극장보다 좋다
새벽 6시의 바닷바람에 난 미칠 것이고
어느 날 송계 동문 쯤에서 주저 앉을 것이다
애당초 좋은 시인 되기는 글렀으니
내게는 시 한 줄보다 바람 한 줄기가 감개하고
서랍 속의 장자보다 속내 내놓은 산중 빈집이 무량하다
그리하여 난 주머니 속의 시간을 길에다 버릴 것이다
관계의 틈에서 내쳐질 것이며
이 얽키고설킨 연애의 덤불에서 벗어날 것이다
다시 31번 국도로 갈 것이고
목포에서 배 탈 것이다
길이 다한 여인숙에서 구름 뜬 술이나 한잔 하면서
꽃 지는 창 밖을 볼 것이다
때때로 수첩을 꺼내 도마령을 비추는 하현을 기록할 것이다
이 집도 절도 없는 정거장에서
다시 난 쓰디 쓴 사랑을 할 것이다.
.
.
.
.
.
내게는 시 한 줄보다 바람 한 줄기가 감개하고
서랍 속의 장자보다 속내 내놓은 산중 빈집이 무량하다
그리하여 난 주머니 속의 시간을 길에다 버릴 것이다
길이 다한 여인숙에서 구름 뜬 술이나 한잔 하면서
꽃 지는 창 밖을 볼 것이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 > Healing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걷지 않아야 한다/김승동 (0) | 2010.11.14 |
---|---|
해남길, 저녁 / 이문재 (0) | 2010.11.03 |
황혼이 질 무렵 /홍수희 (0) | 2010.10.24 |
구절초꽃/ 김용택 (0) | 2010.10.18 |
가을엔 서녘 하늘은 섧다 / 이재현 (0) | 2010.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