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 거둔 수확은 무엇일까 그대여 하고 물으면
갑자기 地上엔 어둠, 거리를 질주(疾走)하는 바람기둥.
그대여, 우리는 지금 出口를 알 수 없는
거대(巨大)한 도화지(圖畵紙) 위에 서 있다.
제각기 하루의 스위치를 내리고
웅성이며 사람들이 돌아가는 시간이면
도시(都市)의 끝에서 끝까지 아픈 다리를 데리고 걸으면서
우리는 누구도 시간(時間)을 묻지 않았다. 문득
우리의 궤적(軌跡)으로 그어진 꺾은선 그래프에 허리를 찔리우고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기에 어둠이 달려왔다.
어둠이여 그러나 숨길 그 무엇이 있어 너를 부르겠는가
빌딩 너머 몇 점 노을로도 갑자기 수척해지는 거리를 보며
우리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전신(全身)으로 서 있을 뿐이다 어둠이여
왜 우리는 세상에 이 크나큰 빈 상자(箱子) 속에 툭
툭 채집(採集)되어야 했을까
팽팽하게 얼어붙는 한 장 바람의 형상(形狀)이 되어
우우 어디로 가서 기댈까
우리가 활활 소멸(消滅)할 수 있는 미지(未知)의 불은 어디?
우리는 都市의 끝, 그 바람만 줄달음치는 역사(驛舍)를 배회하였다.
그러나 여객운임표(旅客運賃表)로 할당되는 가난한 우리의 생.
갈 곳은 황량한 都市뿐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낯선 도시 한켠에 주저앉아 휘파람 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그 믿음을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늘 時間이 정지(停止)해 있는 도시.
푯말 없이 오늘도 캄캄하게 버티고 선
아아, 잎 뚝뚝 떨어지는 우리들의 도시.
급류(急流)처럼 참혹하게 살고 싶었다, 우리
현재(現在)는 언제나 삶의 끝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절벽(絶壁)에서 뒤 돌아보는
우리의 조용한 행적은?
어둠이 정적(靜寂)의 보자기를 펄럭여 세상을 덮고
온통 바람만 이삭처럼 툭툭 굴러다니는 都市에
페이지를 넘기면 막 가을이구나.
그대여, 추수(秋收)하기에 너무도 우리의 生은 이르다.
그러나 우리가 적막(寂寞)으로 폐허(廢墟)가 된 뜨락에 부끄럽게 설 때
오, 그래도 당당하게 드러나는
몇 움큼 퇴비로 변한 우리들의 사랑
가자, 얼굴은 감춘 그대여
개인(個人)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世上
함께 가자, 어디에든 노을은 피고바람 속에서 새벽은 오는 것
이제는 일생을 걸어야 할 때, 지친 하루를 파묻고 일어서면
캄캄한 어느 골목에선가 휘파람처럼 폭풍(暴風)처럼
아아, 화강암 같은 時間의 호각 소리가 우릴 부르고 있네
'기형도 전집' 미발표 유작시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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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우리는 지금 出口를 알 수 없는
거대(巨大)한 도화지(圖畵紙) 위에 서 있다.
우리는 누구도 시간(時間)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세상에 이 크나큰 빈 상자(箱子) 속에 툭
툭 채집(採集)되어야 했을까
팽팽하게 얼어붙는 한 장 바람의 형상(形狀)이 되어
우우 어디로 가서 기댈까
그래도 어딘가 낯선 도시 한켠에 주저앉아 휘파람 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아아, 화강암 같은 時間의 호각 소리가 우릴 부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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