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개심사 왕벚꽃

무디따 2009. 5. 12. 17:10

 

 

 

 

 

 

 

 

바람이 심한 날
개심사에 갑니다.
머리채도 뽑히고,
뺨도 얻어맞고 그래야
오늘은 제격입니다.
시퍼렇게 멍이든 저수지 위에
하얀 검지 같은 다리 위로
가로질러 훌훌 세상을 건너지요.
바람에 멱살이 잡혀
마른 톱밥처럼 불안하지만
물 깊은 당신 마음에
내 얼굴 혹 비칠까봐
한결 바람이 편하지요.
개심사는 바람도 비켜 가는데
고맙게도 나를 피해 가지 않고
지도 위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부처님은 외출하시고
나무젓가락 같은 외나무다리 위에
햇살만 폴폴
졸고 있습니다.

삐딱한 기둥 하나도 절집을
받치고 있는데 얼마나 힘이 센지
같이 졸고 있습니다.
햇살이 터진 볼을 살살 만지니
세상에 나도 졸음이 오는데,
꼭 제집에 온 것처럼
새들이 설법을 하고
디딤돌 위에 곱게 놓인
하얀 고무신을 베고
아버지, 꿈을 꿉니다.

 

개심사 /이상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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