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지에 먹
밤이다. 나는 돌아와 자리에 눕고
마음이 비로소 가난해지는 시간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오래 입은 옷처럼 남루하고 마분지처럼 얇고
우리를 뛰쳐나와 어딘가로 마구잡이 몰려가는 마소(馬牛)처럼
떼로 달려드는 생각들이 줄 세울 수 없이 길어진다
쉽게 잠들지 못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어딘지 불편하다
하루를 지나온 길들이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덮개처럼 길게 덮어 오고
나는 그 밑에서 낱낱이 점검 당한다
이것이었군! 도깨비바늘 몇 개
외출했다 돌아온 이의 신발과 옷자락은 그의 길들을 끌고 오기 마련
풀밭을 지나온 사람 옷자락에 풀씨가 붙어 오고
물가에 갔던 사람 어딘가 물에 젖든 혹은, 물비린내에 젖어오고
꽃밭을 지나온 사람 옷섶에 꽃향기 묻히어 오듯
오늘, 내 행로(行路)가 들통나는 순간이다
도깨비바늘 붙여 온 자리가 모두 다르다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의 얼굴이 갈퀴 위에 하나씩 오버랩되고
나는 어떤 이에게 나의 도깨비바늘 몇 개나 붙여 보냈을까
크지도 않은 작은 바늘 하나 손이 닿지 않아 잠자긴 글렀군
누군가 빼 주던지 어쩌다 빠지던지
삭아서 살에 스며 내 몸의 일부가 되던지
화농성 염증이 되어 오랜 통증을 유발시키던지
말(言)의 갈퀴 질투의 갈퀴 미움의 갈퀴 증오의 갈퀴
의심의 갈퀴 분노의 갈퀴 절망의 갈퀴.갈퀴.갈퀴들...
모두 상처다
도깨비바늘 하나 도깨비바늘 두울 도깨비바늘 세엣...
도깨비바늘 아흔아홉
잠든 그대들, 지금은 수면주기 어디쯤 있소.
詩 송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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