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자화상 그리기」외 1편 김명옥 /계간『시에 』2016년 여름호

무디따 2016. 5. 17. 19:40







자화상 그리기

 

 

 

 

마음 아픈 시집을 덮고 돌아눕는 날에도 저 여자

끙끙 앓는 날에는 무릎걸음으로 다가 간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보면 삶이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저 여자

눈물 나는 날은 가까이 보이기도 하는 저 여자

다른 방법은 알지 못 해서 저 여자

아직, 무엇이 더 남았느냐고 내게 묻는 저 여자

 

허공에 갇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저 여자

 

겹겹이 쌓인 껍질을 벗겨

그 여자를 발굴하는 시간

 

어디로,

달려 나가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한 천 년 주저앉으려는 것일까요?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저 여자

 

 






환승하는 저녁

 

 

 

 

비밀번호 입력하면

뒤축이 뭉개진 신발들은

서로 포개지고

끌어안고

등을 지고 누웠다

묻어 온 흙 부스러기들은

하루 분의 사리

 

물려받지 말았어야 할 것들이

혈관에서 꿈틀거리는 시간

 

말라버린 핏자국 따라

가파르게 환승해도

출구 번호는 기억나지 않고

혓바늘로 돋아나는

 

읽다만 페이지인가

함부로 접혀지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