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 속 후박나무 한 그루 서있다
낡은 고무신 그림자 끌고 창가를 기웃거린다
어쩌면 내 전생이었을지도 모를,
저 나그네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다
해질녘 빈손으로 겨울마차 기다리는 마음도
따스한 술국에 몸을 데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늘 아래 쉬어간 사람의 안부도 궁금할 것이다
천장 한 구석 빗물 자국처럼 남아있는
기억 속으로 나무 그림자가 걸어 들어온다
아이 얼굴보다 큰 잎으로 초록세례 베풀고
허방짚던 내 손을 맨 먼저 잡아주었던
후박나무, 그 넉넉한 이름의 상징만으로도
내 삶의 든든한 배후가 되 주었지
나는 저 후박한 나무의 속을 파먹으며 크고
늙은 어메는 서걱서걱 바람든 뼈를 끌고 있다
채마밭 흙먼지에 마른 풀잎 쓸리는 저녁
후박나무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다가
빈 가지에 슬며시 별 하나를 내건다
세상의 창, 모든 불빛이 잔잔해진다
.
.
.
후박나무가 있는 저녁/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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