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먹칠을 하며

무디따 2010. 8. 6. 14:38

 

 

 

 

 

 

냉장고에  시름인 듯 주저앉은 찬통을  식탁 위에 늘어놓고
헛구역질하듯  젓가락질을 하다보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말라는 " 시가
무슨 뜻인지 어렴픗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아차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반백을 붓질하고 있다.
시간 속에 나부끼는 고립된 존재로서
한계가 있는 삶의 비극성이 온몸을 잠식할 즈음
먹장난을 시작했다.

인체의 신비를 감지하는 즐거움,

 존재에 대한 통찰 도구로서 크로키만 한 것도 없다.
짧은 시간에 먹이를 낚아채는 짐승의 본능으로
한 순간도 머무름 없이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게 맛이다.
잠시라도 멈칫하는 찰나에는 화선지가 먹탕이 되어버리니..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순 명쾌하게 대상을 드러내되
인체 외곽선 단순 재현이 아닌 존재의 파동까지 캡쳐해

 나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팠지만
1년 8개월을 넘기도록 극히 제한 적 포즈만을 보여주는 모델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손끝 간 괴리는 메워지지 않는다.
한 생애가 구축해 온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내부의 울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모델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 부터도 한 때 자기 감정에 충실한 것을 경시 했던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것은 스스로  미치광이임을   자처하는 것과 진배 없는데
그 누가 백척간두에 서서 진 일 보 하는 것만큼 위태로운 작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투시 카메라 같은 혜안이 생기지 않을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먹칠한다.

말로만 투필성자를 꿈꾸면서...

 

 

2010.8.6 크로키 휴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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