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Nude Croquis

사닥다리는 낮아 하늘에 닿을 수 없다

무디따 2009. 9. 12. 23:01

 

5분 크로키/소포지에 수묵담채    

 

 

 

 

녹슨 굴렁쇠, 삐걱거리는 자전거가 되면 무엇이 나쁜가
가끔은 고장난 전축, 가다가 멎는 대물린 시계가 되면
무엇이 나쁜가
망가진 안락의자
이빨 부러진 머리빗이면
무엇이 나쁜가

우리 가진 고뇌가 자주 덧나는 상처라면 어떤가
시장에서 살 수 없는 행복을 책 속에서 살 수 있는가
위조되지 않는 삶, 수정할 수 없는 하루
더디게 오는 저녁을 가방 속에 챙겨 넣고 지퍼로
잠가 둘 수 있는가

들깨꽃 지는 한낮에도 지상의 발들은 바쁘고
단풍잎 같은 손의 정맥을 바라보면
나는 모자 하나를 걸어도 빠져내리는 약하게 박힌 못과 같다

수없는 오전이 가고 또 남은 오후를,
아직도 그려 넣으면 임금도 될 수 있고 당나귀도 될 수 있는
덜 그려 넣으면 어떤가, 우리
돌다가 멎은 그림이면 어떤가, 우리
돌다가 멎은 팽이, 촉 나간 손전등이면 어떤가
아무래도 사닥다리는 낮아 별들의 하늘에는 닿을 수 없다.

 

 

 

詩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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