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김밝은

무디따 2017. 8. 4. 16:31


 




 


 

아릿하고 매운 하늘을 머리에 인

길이 멀미를 하듯 지나갑니다

 

직립의 시간 속

누구 하나 말 걸어오지 않는 날

 

몸은 늘 가로로 누우려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흰 바람만 푹푹 쏟아집니다

 

허공으로 길을 내던 고광나무 곁을 지나

천지간 뭉클한 그대의 집,

가는 길은 멀어서

 

겨울을 걸어가는 홍방울새의

눈 속에 숨겨두었던

오래된 말들이 등을 보이며 떠나갑니다

 

풍화되어가는 약속의 전언

나는 일찍이 입어본 일이 없는 납의 무게를 입*고도

 

아직

그대를 기다립니다

 

 

* T.로스케의 시「지금은 무엇」중에서.

 

 

 

                      -시집『술의 미학』(2017. 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