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Cinema Paradiso

까미유 끌로델 (1988, Camille Claudel)프랑스

무디따 2008. 7. 20. 23:31

 

원제 : Camille Claudel
작가 : Reine-Marie Paris
감독 : Bruno Nuytten
출연 : 이자벨 아자니, 제랄드 드 파르띠유

 

 

어둠 속에서 무정형의 원초적 덩어리를 주무르며 세상의 모든 아침을 맞았던 여인.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음에도 위대한 조각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녀에게는
 비극적 여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지워지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극적인 비극을 즐겨 말한다.
19세기 최고의 여류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항상 로댕의 그림자 뒤에 자리한다.
근대 조각의 신기원을 기록했던 로댕의 유명한 여성편력에서 유독 까미유 끌로델이 거론되는 이유는
 그녀가 단순히 그의 작업모델이자 정부가 아닌 한 사람의 조각가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까미유에게 있어 로댕은 여성의 신체조건으로는 힘든 조각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재능과 열성을 이해하는 동지이자 선생이었고, 로댕 역시 까미유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기다려왔던 구원의 여인으로 자신의 비법을 전할 수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 이미 세상의 인정을 받았던 이 천재조각가는 까미유의 천성적인 예술혼을 발견한다.
영화는 로댕의 비극적 연인으로만 세인에게 회자되던 그녀가 치열한 예술혼과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가진 한 사람의 천재 조각가였음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영화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부분은 1893년경 로댕의 불성실한 생활에 견디다 못해
까미유가 로댕과 결별하게 되는 부분이다.
사랑의 배신과 더불어 자신의 예술 세계까지 망가져가는 까미유 끌로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울증과 피해 의식, 편집광적 증상을 보이며
거리를 방황하며 밤마다 로댕의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지만, 그러나 결국 그녀는
어둡고 침침한 지하 별장에서 고통 속에 빚어낸 여러 작품들을 뒤로하고
정신 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실려가게 된다.
인간의 영혼을 빚어냈다는 평을 받는 로댕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강렬한 영혼의 힘을 직감했는 지도 모른다.
불같은 까미유의 사랑에 시종 애매모호한 태도로 비겁한 행동을 취한 로댕 역시도
그 사랑의 희생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댕이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관념적인 조각작품을 전시하고 있을 때도
까미유는 자신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배시키며 조각했던
그 작품은 비록 세상의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실상 행복을 따지자면 까미유 쪽이 아닐까
몇 배의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감독인 브뤼노 뉘탱은 자기의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예술가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극이란 기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일종의 심리적 상태로 파악하는 듯,
카메라는 집요하게 까미유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까미유 역을 맡은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자벨 아자니는 이 영화를 통해 미모와 재능을 가진 여성의 오만함,
흙과 조각에 대한 본능과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정열의 여인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모된 모습까지를 완벽하게 연기해
세자르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문학이나 회화와는 달리 현장에 소리가 따르는 예술인 조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영화 씬마다 소란한 분위기의 음향을 두드러지게 했다.
이것은 그녀의 삶이 진행되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과 내면상태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하나의 조각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한다.

***   ***   ***   ***   ***   ***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폴, 일찌기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 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풀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전이오 그..녀..를..외..면..할.. 수..는..
로댕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 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의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사랑하는 폴
파도 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서야
고모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 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안할 뿐이다.

 

까미유 끌로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