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살아남기」김기홍
무디따
2019. 8. 2. 01:27
살아남기
김기홍
빚으로 공사하는 회사들 자빠지고
돈맛에 벌여놓은 낙지발 회사도 넘어지고
일 끊겨 돈 못 받는 인부들 속처럼
중단된 공사장 철근도 벌겋게 삭아내려
일 구하기가 사십대 노총각 이십대 처녀 붙들기보다 힘들어
자존심이란 자존심 팽개치고
어쩌다 기별 온 공사장에 우르르 모여든 떼거지들
서로 놀라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푹 퍼진 보리누룽지 빼앗길까
으르렁대며 핥아먹는 똥개들처럼
동지는 어디 가고
콩 한 개라도 나눠먹자는 심보는 어디 가고
앞 눈치에 옆 눈치 뒤꽁지 눈치보기
아따따 이러다가 모가지가 캭! 될라
철근 많이 메고 뛰어다니기
어느 놈이 슬라브에 방석 까냐
엉덩이 바짝 추켜들고 갈쿠리질
갈쿠리 반 바퀴만 돌리며 남의 속도 따라잡기
이러다가 이러다가······
남들 체조하는 일곱 시로는 불안해
은근슬쩍 오야지 눈에 띄게
삼십 분 당겨서 어두울 때 일 시작하기
캄캄해서 손 놓기
그러다가 굶었으면 굶었지 더러워서 못하겄네
떠난 사람 뒤에 안심하기
노임에 불만 없기
집에 가면 허리가 끊어질락말락
어쩔겨 묵고 살아야 쓴디
동지가 밥 멕여주간디
양심이 돈주간디
나중에 어쩔갑세
어서 나가 어서 나가
눈치보기 뛰어다니기 양심구기기 오줌참기 똥참기
점심 먹고 안 쉬기
그러다가 오늘도 떠나가는 사람
에라이 똥개 새끼들아 잘 처묵고 잘살아라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모냥이여
지독한 놈들
쓴 소주 나발 불고 굵은 소금 한 입 물고
소득없이 떠나가는
떠나가는 의리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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