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웨딩 Silent Wedding , 2008 제작
감독/호라티우 말라엘
출연메다 안드리아 빅토르, 알렉산드루 포토신, 발렌틴 데오도시우, 알렉산드루
영화 <사일런트 웨딩>은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던 그 사건을 담은 소설 <Mitrea Cocor>는 영화에 절대적인 영감을 주었다.
출간되자마자 수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소설을 읽은 호라티우 마라엘레는
드라마틱하고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스타일에 단번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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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시인 엘뤼아르의 글이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갯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걸레도 있으며, 들에 피는 꽃도 있고,
무덤 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진정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영화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어디 영화나 시 뿐이랴. 진정성을 담은 모든 예술이 그렇다.
진정한 예술은 아름다움 뒤편에 누운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일런트 웨딩>은 유쾌하면서도 남루한 루마니아 농부들의 삶에 닥친 어떤 잔인한 사건에 대한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흥겹고 활기차다. 미끈하면서도 듬직한 청년 이안쿠(알렉산드루 포토신)와 건강미 넘치는 처녀 마라(메다 안드레아 빅토르)가 결혼을 결심하고, 마을 사람들은 늘 그래왔듯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소시지, 바비큐를 굽고 술을 빚어 손님을 초대하는, 빵이 광주리를 가득 채울 때쯤이면
집시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마을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드는,
정겨우면서도 익숙한 결혼식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죽었던 1953년은 루마니아 농부들의 평범한 행사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소련은 스탈린의 죽음에 대해 일주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파티, 집회는 물론 웃음까지 금지시킨다.
당시의 루마니아는 소련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바, 변두리 시골에서 열린 이 조촐한 결혼식은 당장에 취소될 위기에 처한다. <사일런트 웨딩>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순간부터다.
잔뜩 마련한 음식이 썩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멀리서 초대한 친척들을 하릴없이 돌려보낼 수 없었던 마을사람들은 웃음은커녕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결혼식을 벌이려고 한다.
침묵 속에 벌어지는 결혼식과 피로연은 무성영화를 방불케 한다.
20분은 족히 넘길 법한 이 소리 없는 장면들에선 옛 무성영화의 그것과 같은 유쾌한 과장과 정신없는 분주함이 흥겨운 분위기를 돋운다. 그들을 둘러싼 엄혹한 시대의 어두움마저 한 줌 가벼운 농담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흥이 오른 그들이 소리를 내자, 여지없이 파국이 찾아온다.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과장된 분주함은 돌처럼 굳어버린 여인의 눈빛 너머로 까마득하게 사라진다.
소박하다 못해 남루하기까지 한 루마니아 시골사람들이 순식간에 세계사의 한복판으로 널브러지는 순간이다.
<사일런트 웨딩>은 루마니아의 역사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호라티우 마라엘레 감독은 막스 형제 식의 무정부주의적인 코미디를 시도하다가 느닷없는 파국으로 영화를 뒤엎어 버린다. 이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시도일수도, 아니면 미적인 도전일수도 있는 부분인데,
어쨌든 이런 대비 덕분에 진실은 더욱 둔중한 무게로 관객을 강타한다.
유쾌한 루마니아의 시골 정경으로 시작한 영화가 코미디를 선회해 도달한 결말은 충격적이다.
마을 남자들은 역사라는 잔인한 열차 속에 갇힌 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남겨진 여인들의 텅 빈 눈빛이 화면 안을 가득 메운다. 어떠한 가식도 거짓 구원도 없다.
출처: https://zooha.tistory.com/10 [온도]
한 줄 영화평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