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 1940 제작
감독/존 포드
출연/헨리 폰다, 제인 다웰, 존 캐러딘, 찰리 그레이프윈
시놉시스
톰 조드는 감옥에서 막 출소하여 어머니와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어쩌다 싸움에 휘말렸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여 4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지독한 가뭄 그리고 거대 회사와 은행 빚에 쪼들리다 못해 가족은 쫓겨나기 직전이다.
마침내 톰 조드의 가족은 일자리가 넘친다는 낙원의 땅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결정한다. 고물 트럭에 삼대가 모두 타고 길을 떠난다. 한때는 마을의 존경받는 목사였으나 지금은 걸인이 된 케이시도 그들과 함께 간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그곳은 듣던 것과 딴판이다. 여기도 악독한 농장주들이 폭력과 술수를 동원해 배고픈 하층민들을 갈취하고 있다. 톰 조드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 사회 개혁 의지를 갖게 된다.
작품해설
1. 존 포드의 비서부극
“내 이름은 존 포드입니다. 나는 서부영화를 만드는 감독입니다.” 영화감독 존 포드가 미국영화감독조합에서 한 말이다. 존 포드는 무수한 서부극을 만들어왔고 그의 잘 알려져 있는 대표작 역시 서부극의 범주 안에 있다. 그중에서도 〈역마차〉(1939), 〈수색자〉(1956),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 등이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서부극만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비서부극도 적잖이 만들었고 그 영역에서 역시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다만 이상하게도 존 포드는 그가 남긴 수없이 많은 서부극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어쩌면 존 포드의 서부극을 단순히 장르적 성취라고 여긴 당대의 시선 탓도 있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늘 비서부극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밀고자〉(1935), 〈분노의 포도〉(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조용한 사나이〉(1952). 존 포드의 대표적인 비서부극 네편으로 그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중에서도 〈밀고자〉와 〈분노의 포도〉는 어두운 시대성, 리얼한 사회성과 서민성 그리고 인간 자체의 존재론적 질문을 깊이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제작 과정
〈분노의 포도〉는 〈에덴의 동쪽〉 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미국 대공황기에 경제적 곤궁에 빠진 톰 조드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1939년 출간된 직후 빠르게 대중을 매혹시켰고, 스타인벡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194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당시 이십세기 폭스의 프로듀서였던 대릴 F. 자눅은 원작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판권을 구입하여 존 포드에게 연출을 의뢰했다. 〈시민 케인〉(1941)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그렉 톨랜드가 촬영을 맡았고 존 포드의 작품 〈젊은 링컨〉(1939), 〈모호크족의 북소리〉(1939)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헨리 폰다가 다시 한번 출연하여 주인공 톰 조드 역을 맡았다.
그렉 톨랜드의 촬영은 전반적으로 짙은 어둠을 의도적으로 지향했다고 한다. 예컨대 탐이 가석방 직후 마을을 찾았을 때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숨어 살던 남자가 탐에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은 캄캄한 어둠과 흔들리는 촛불의 강한 대비로 표현되어 있다. 혹은 후반부에 벌어지는 폭력들도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짙은 어둠 덕분에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헨리 폰다의 역할도 크다. 헨리 폰다는 다소 우울하고 외로운 듯한 인상을 지닌 방랑자나 홀대받는 젊은 하층민의 이미지를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3. 주요 장면
영화의 경우 결말부가 원작 소설과 판이하게 다르다. 소설에서는 아기를 사산한 탐의 어린 누이가 굶주림에 빠진 한 노인에게 자신의 젖을 물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에서는 탐과 어머니와의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온갖 고난을 겪은 다음 사회의 어두운 모순을 깨닫고 변혁의 의지를 갖게 된 탐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족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원작에서는 생존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면, 영화에서는 새로운 활동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훗날 헨리 폰다는 이 작품을 회상하며 그 당시 존 포드가 서민들의 감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증언한다. 예컨대 그는 출소한 탐이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 대해 말한다. 원래 헨리 폰다는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그 장면을 연기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존 포드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유는 시골 사람들은 가족끼리 그렇게 인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어머니와 아들이 악수하는 것으로 연기 연출됐다. 물론 아들과 어머니가 만나는 이 장면은 아들과 어머니가 헤어지는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마지막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시골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지만…”이라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며 작별을 고한다.
4. 주제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기라는 사회적 궁핍과 톰 조드라는 한 인간의 가난한 삶이 맺고 있는 관계를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이 있다. 존 포드 영화의 탁월한 연구자 태그 갤러거는 자신의 책 〈존 포드〉에 쓰기를, “포드의 많은 초기 영화에서는 사회와 그 지속 신화가 실패할 때 개인들의 정체성도 위기에 처했다. 역설적이게도, 〈분노의 포도〉에서는 그 반대가 일어난다. 개인들은 자기 정체성 면에서뿐만 아니라 한 계급의 구성원적 정체성 면에서도 강화된다”고 쓰고 있다. 그러니까 포드의 많은 초기 영화들이 사회가 나빠질수록 주인공도 함께 나빠지는 면모를 담고 있었다면 〈분노의 포도〉는 사회가 나빠지자 그 주인공이 사회와 계급의 구성원으로서 오히려 각성해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분노의 포도〉가 존 포드 자신이 꾸준히 다루어온 가족과 집에 대한 주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존 포드 스스로는 〈분노의 포도〉가 사회 드라마가 되는 것에 거리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관심을 갖고 연구한 건 사회가 아니라 톰 조드 가족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주요 등장인물
톰 조드(헨리 폰다) : 살인죄로 4년간 복역한 뒤 출소한 가난한 젊은이. 꿈의 땅 캘리포니아에서 처절한 현실을 목격한 뒤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톰 조드의 어머니(제인 다웰) :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조드 가족을 이끌어가는 현명하고도 담대한 어머니
케이시(존 캐러딘) : 존경받는 목사였지만 경제적으로 마을이 어려워지자 부랑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톰 조드에게 세상 보는 눈을 가르쳐주는 선지자.
명장면 명대사
케이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의 영혼 말고 거대한 영혼을 가져라. 모두에게 속하는 거대한 영혼. 저는 주위의 어둠 속에 있어요. 어머니가 계신 곳 어디에나요. 가난한 자의 투쟁이 있는 곳 어디에나요. 경찰의 폭행이 있는 곳 어디에나요. 분노의 함성이 있는 곳 어디에나요. 아이들의 웃음과 굶주림이 있는 곳 어디에나요. 사람들이 제 손으로 기른 것을 먹고 제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곳 어디에나요.
- 톰 조드한 줄 영화평 /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이주했던 민초들이 오버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