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7. 2. 23. 18:07













더 이상 나는 세상의 그늘에 숨어 생활하지 않는다
타인들의 눈 속에서 내 모습 읽지 않는다
타인들의 말 속에서 내 목소리 듣지 않는다
타인들의 그 어떤 증오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나를 확인하지 않는다
나는 내 정신의 모든 질병들과 함께 잠들고
함께 여명이 밝아오길 기다린다
내 질병은 이 시대와 아무런 상관 없이
내가 내 속으로 너무 깊이 내려선 탓에 생긴
잃어버린 한 마리 검은 양의 비명소리이다
그 아픔으로 나는 이 시대를 견디며
타인들이 누리는 모든 안락을 피해 간다
그들의 지름길로 몰래 들어가 절대 빵을 훔치지도, 만들지도 않는다
나는 아무런 억압 없이
얼굴이 불꽃인 고독한 사람들의 페이지 밑으로 들어간다
독서는 노랗고 어두운 땅이다
그 땅은 내 피로부터 솟아난다
인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행동인 피
나는 내 내면을 가로질러 날아오르는 모든 독수리떼들에게
그 피를 바친다
형태를 드러낸 감옥은 이미 감옥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으로
독수리떼들을 날려보낸다
그리고 수천, 수만 번의 걸음 뒤에 남겨진 그림자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자는 얼굴들의 숲
―우리는 얼마나 열렬히 그 숲에 매달렸던가!―
나는 무겁게 한숨 쉬는 그 페이지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건강한 걸음걸이,
어머니의 환한 밝음이 내 등을 쓰다듬는 곳으로 떠난다
아주 깨끗한 출산처럼
모든 것을,
모든 것들을 싹둑 다 잘라버리는 그곳으로
맨발인 채로, 맨발로



詩 김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