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5. 5. 16. 12:02

 

 

감독/누리 빌게 제일란
출연/할룩 빌기너, 멜리사 쇠젠, 드멧 아크백, 아이베르크 펙잔, 세르하트 무스타파 킬리츠

 

줄거리

 

소년이 던진 돌멩이 하나,
한 남자의 기만적인 삶을 깨운다!
“삶을 계속하자... 나를 용서해줘...”


전직 배우이자 작가인 ‘아이딘’은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한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고 있는 그는 양심과 도덕을 운운하며 자신이 얼마나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인지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여동생 ‘네즐라’는 번번히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독설을 던지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 ‘니할’은 그의 위선적인 모습을 경멸하며 권태를 느낀다.
서로에게 상처와 불신만을 안기는 세 사람은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의 충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아침, ‘아이딘’은 불현듯 찾아온 낯선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5월 7일, 기적과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 epiphany ]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한 영화사의 걸작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윈터 슬립>은 2014년 칸 상영 직후 IMDb 평점 9.9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걸작이다.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칸 영화제에서만 무려 8회의 수상을 기록한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윈터 슬립>은 해외 평단으로부터 “시대를 초월한 걸작! 정교한 영화적 테크닉, 깊이 있는 지적 통찰” (뉴욕 타임즈), “기념비적이고 신비로운 영화” (시카고 리더)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 (가디언) 등의 찬사를 얻었다.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 작품은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깨달음의 순간(에피퍼니 epiphany)을 포착하여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 숭고한 자기 인식의 순간
제임스 조이스의 ‘에피퍼니’의 정서를 담은 서사적 영상미학

영화 <윈터 슬립>에서 호텔 오셀로를 운영하는 ‘아이딘’은 젊은 아내 ‘니할’, 이혼한 여동생 ‘네즐라’와 함께 살고 있는 은퇴한 배우이자 작가이다. 어느 날, 가난한 세입자의 아들이 아이딘의 차를 향해 돌을 던지고, 그 사건은 단단한 성벽과도 같은 그의 기만적인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사소하게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갈등과 번뇌를 거쳐 아이딘은 문득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자기 인식의 순간을 맞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사자들 The Dead>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운 설경과 함께 절묘한 ‘에피퍼니’의 순간으로 빛을 발한다. 자신의 내면과 삶의 진실을 포착하게 되는 이 순간은 주인공의 진솔한 내레이션과 함께 관객의 마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걸작이라고 칭송되는 위대한 문학 작품들에 필적할 만한 작품”(레크.아츠.무비), "무서울 정도로 지적인 작품" (텔레그라프) 이라는 해외 언론의 호평이 말해주듯, <윈터 슬립>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해와 탐구의 과정을 담은 거장의 진중한 걸작이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지적인 주제 의식과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대사,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기적처럼 찾아오는 숭고한 깨달음의 순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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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처럼 부유하는 사람들
영화 엔딩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이딘은 창가의 아내 니할을 바라보며 독백으로 "우리 삶을 이어 가자"며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아이딘과 니할은 마치 떨어진 섬처럼 각자의 방에서 존재할 뿐이다.

이런 회환이 화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일찍이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예술적 말년성이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떨까?"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이드가 말했던 '조화롭지 못하고 평온하지 않은 긴장'의 기운이 <윈터 슬립> 속에 슬며시 깃든 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로 세일란의 영상 철학이 여러모로 정점에 이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코미디나 소소한 웃음조차 허용하지 않는 그의 견고한 자세 탓이다.

그는 웃음의 철학과는 노골적으로 거리를 둔 소우주를 창조해 왔다.

예를 들어, 체호프는 생애 마지막 해(1904년),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를 썼는데 연출가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코미디나 웃음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웃음은 비극 안에서도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미학적 관계를 잉태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세일란이 크리스토퍼 듀랑의 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처럼 체호프를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블랙 코미디를 갖고 나타나리라 상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상실과 소멸(비극)에 천착하는 세일란도 중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유하는 고독한 섬도 때로는 웃음이 필요한 법이니까!

 

글 전종혁(영화 평론가) 

 

 

한 줄 영화평 /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재 확인하게하는, 새드무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