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눈꽃을 찾아서, 만항재. 태백- 정동진

무디따 2015. 1. 18. 10:12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곽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