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4. 7. 20. 20:00
죽음의 한 연구
"나는 어찌하여,햇볕만 먹고도 토실거리는 과육이 못되고...(중략)...
때에 덮여서야 맑아지는 골동품은 못되고,
나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못되고,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14년 째 완독을 못하고 있는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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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병아리 같을 때 아플까 봐 무서웠다.
아니, 죽을까 봐
아파 누우면 아이들 꼴은 뭐가 될까
죽기라도 해서 계모 밑에서 땟국 쩔은 옷에 눈칫밥 먹는다면
상상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되었으니
밤에 엄마 찾으며 울지 않을텐데
저희 갈 길
잘 갈텐데
무엇이 두려운걸까
다른 노선으로 환승하는 것이
가는 곳을 몰라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꿈꿔 오지 않았던가?
젖가슴 풀어헤칠 젖먹이도 없고
못 보면 숨 넘어 갈 정인도 없고
불효라고 가슴치실 부모님도 없고
몸 입은 것들 다 가는데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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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그러나 뭔지 모르는 곳에서 뭔지가 형성되어 왔었는데,
나는 모른다,그러나 나는 그것을 달콤하게 내려다보며,
나는 모른다,나는 그 위에 내 흰 그림자를 아름답게 드리우고 선회해 왔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모른다,그것이 나의 비상과 나의 휴식을 싸안아줄 그런 바다 같은 것이었는지 어쨌는지,그러나
나는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나의 비상과 휴식의 바다는 아니었고,그만큼 넓고,그만큼 깊은 불구덩이어서,
내 날개가 지치기를 바라고,음험히 입 벌리고 있는 그런 어떤 것이었던지도,글쎄 나는 모른다."
박상륭 소설/ 죽음의 한 연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