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김낙필
루씰.. 당신이 뭘 알아요..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는데 남태령 깔딱고개를 넘어 봤어요?
아무리 가까운 촌수라도 보지 않으면 남 만도 못하다는거 알잖아요 루씰..
남태령 언덕 왼쪽으로 무당집 있잖아요 거기서 점 봐 봤어요?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잖아요 코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코 앞에서 얼쩡거려야 미운 정이라도 쌓인다니까요
정말예요 이젠 모습 마져도 가뭇가뭇 흐려지고 있잖아요 루씰..
내가 뭐랬어요? 잊혀지지 않으려면 등 뒤에서라도 수없이 넘어지라고 했죠?
했어요 않 했어요? 그러니까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영영 잊혀지고 마는 거라니까요 루씰..
왜 내 얘기는 팥으로 팥죽 끓이는 거래도 믿지 않는거죠?
내가 그랬잖아요 사람의 마음은 믿을수가 없어서 항상 오락가락 하는 것이라구요
밤잠 설치며 올인 하다가도 갑자기 뒤집어 지는 거예요
언제 그랬냐는듯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니깐요 그렇게 지치는 거예요 그렇게 시드는 거예요.
그렇게 멀어지는 거라니까요 루씰..
그래서 난 술 잘먹는 사람이 좋아요 한소리 또하고 한소리 또하고
혀 꼬부라져 부정확한 목소리라도 훨씬 믿음이 가는 거있죠?
취해서 흐트러지고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기 좋아요 거긴 위선이란게 없거든요.
침 튀기며 자기 항변하는 것도 좋고 게슴츠레 안주 집다가 젓가락 떨어뜨리는 짓도 좋아 보인다니까요.
제 설음에 못이겨 울먹이는것도 좋구요 흐트러져 헛점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눈물겹게 이쁘다니까요.
루씰..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사당동 "아기동자" 집에 함 가보세요.
도대체 무슨 팔자인지는 알아야 할것 아녜요.
그리고 간뎅이도 좀 키우세요 코딱지 만한 간뎅이 갖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요?
점괘가 혹시 안 나올지도 몰라요 그땐 끝이예요 루씰 당신이 이세상 사람이 아니란 증거 거든요.
그땐 날 불러요 나도 점괘가 잘 안 나오는 편이거든요 루씰..
당신 운명이라는게 개떡같은 거에요 내 운명도 마찬가지 구요 촛불같은 거예요.
그러니 취해 살자구요 흐트러져 살자구요 잊혀지며 살자구요 멀어지며 살자구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구비구비 육자배기나 토하면서 겁없이 살아보자구요 루씰..
자기방어 하지 마세요 세상은요 슬픈 사람에겐 더욱 슬프고 아픈 사람에겐 한없이 아프기만 한 겨울같은 거예요 루씰..
앞으론요 나는 취해서 살테니깐요 당신은 당신 맘대로 사세요...
그리구 이젠 나도 몰라요...내게 묻지도 말구요 날 다신 찾지도 마세요......
시간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