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김요일
1.
색색의 가시가 돋친 방 안에서 술을 마셨어요
깨진 술병으로 치장된 벽에 기대앉아 음악을 마셨죠
검은 커튼 뒤로 숨겨진 창밖의 붉은 강에는
일년 이년 더러운 슬픔이 흘러갔죠
아침이면 마틸다, 당신은 하얀 웃음으로
스스로 문 걸어 닫은 자유감옥을 환히 밝혔고
쉴 새 없는 이야기로 조잘조잘
시냇물 흐르게 했죠
그럴 때면 까맣게 말라비틀어진 내 몸뚱어리가 반짝 빛나곤 했어요
낡은 스피커에서는
혁명 정부의 몰락을 알리는 흑색 비방이 계속 되었어요
듣고 있었던가요? 그러거나 말거나
맞닿은 배꼽에서는 우담바라 닮은 하얀 꽃들이 피어났죠
우리 사랑은 소멸에 대한 설명
일생을 기대앉아 서로를 지워가며 살기로 했죠
아아, 사랑은, 사랑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혁명임을
2.
아무도 몰래 망명하던 날 밤
그대는 발그레해진 귀를 내 어깨에 날개처럼 달고
가난한 사랑 노래 들으며 잠이 들었죠 잠든 체 했죠
“마틸다, 술 한 잔 주오
세상은 천박하고
기타줄은 잘도 끊어지네
마틸다, 한 잔만 한 잔만 주오”
언제나 불면인 당신이 눈물 자국을 지우지도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숨죽이며 색색의 가시와
깨진 술병에 찔려 상처 난 약속을
몰래 주머니에 챙겨 넣었어요
우리를 둘러싼 벽도 창도 창살도 모조리 떼어 실었죠
자유감옥의 온갖 불온한 문서와 내게 쏘아대던 서러운 화살들
그리고 치욕스런 소문까지 훔쳐 달아났죠
물론, 까맣게 반짝이던 내 시신도 함께요
지겹도록 탈옥을 꿈꾸던
당신만 그곳에 남겨두고
마틸다,
아직 거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