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1. 5. 24. 23:54

 

 

 

 

 

 

 

 

 

 

 

 

 

 

 

 

 

 

 

 

 

 

 

 

 

 

 

 

 

 

 

 

 

 

 

 

 

 

 

 

 

 

 

 

 

 

 

사는일이 녹녹치만은 않다.
아이들을 낳아 곱게 키우는일부터
짝퉁의 뒷바라지
살림살이 윤기나게 매만지는 일로
십수년을 하루처럼 보냈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옆구리도 결리는..
그 사는일이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어느날 인가부터
무심히 하늘 바라보는일이 늘어가고
창밖 물드는 가을에 젖으면서
산다는일에 실증이 나기 시작한다.
노란은행잎 한장만도 못하다는 실의와
존재의 실망으로 부대끼며
마음이 멍들기 시작한다.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존재와 맞서고
이겨내여 한다는 고통이 만만치가 않다.

설악면, 부석사, 사량도, 볼음도, 태안반도,
마곡사,용문골, 구룡포.. 태백준령을 넘으면서도
나는 끝내
나를 잡지 못했다..

모진 바람이다..
한순간에 가루가 될지도모르는..

泰苦寺태고사에서 머리를 밀고싶은 충동
해남땅끝 앞바다로 잠수하고싶은 일탈..

오늘 기여히
삼십년 고히 간직한 치렁치렁한 흑발을
귀밑에서 잘라낸다.
그리고 氷点빙점같은 눈물을 뿌렸다.

나는 나를위한
내가 아니였음에
나를 무참히 살해했다.

보글보글 끓고있는
저녁상에 오를 생태찌개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목숨같은 머리를 자르다/ 詩 김낙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