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1. 5. 9. 01:04

 

 

 

 

 

 

 

 

6월 16일 그대 祭日(제일=제삿날)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신에 山 아래 사는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詩集(시집) 한 권을 등기로 붙였지

 

"客草"(객초)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첫 페이지를 열면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 꺼야
나같은 똥통이 사람되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허우적 허우적거리지
말이 그렇지 적삼이랑 어깨는 잠기고
모가지만 달랑 물 위에 솟아나 있거든

 

머리칼은 怯먹어
오그라붙고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瞳孔(동공)아래 파리똥만한 點(점)도 찍었거든

 

국적없는 道化師(도화사)만 그리다가
요즘은 상투머리에 옷고름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잡수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유치한 丹靑(단청)색깔로 붓의 힘을 뺀 題字(제자)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四肢(사지)를 나무래고
침을 뱉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이렇게 시든다우
꿈이 없어서 꿈조차 동이 나니까
냉수만 퍼 마시니 촐랑대다 지레 눕지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고 슬픈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낭송 김영동

 

 

 

 

 

이 곡의 원제는
김영태 시인이   김수영 시인의 제일(祭日)에 부친
'멀리 있는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