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그리는 작업실

슬픔에 관하여

무디따 2007. 3. 8. 00:22


넋두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다 채우지 못한
행복에 대한 미련도 아닌 것이

밤이면 밤마다 야상곡(夜想曲)처럼
낡디 낡은 건반 위를 서성거리는
뼈만 앙상한 굳은 살 노부인의 손가락처럼

말 한 마디 가르쳐 준 앵무새에게
마지막 노후를 다 내어 맡긴
어느 산골 노부부의 잔잔한 고독처럼

딱히 보여지는 영상도 없이
티브이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다아 끝나고
지지거리는 화면 앞에
그만 창백한 석상(石像)이 되어 버린

아아, 어머니 뱃속을 뒤틀어 뛰쳐나오며
울었던 울음 흘렸던 눈물 그러고도 모자라
목구멍에 걸려 버린 붉은 빛 덩어리 하나

에에취 에취 여러 번 재채기하여도
알레르기 되어 버린 재채기
눈물나게 줄곧 하여도
끝끝내 튀어나오지 않는 붉은 빛 덩어리 하나

이방인(異邦人) 같은 삶,
삶 같은 이방인,
저 하늘에 닿기 전엔 뱉지 못할 듯
막연한 슬픔의 덩어리 하나

넋두리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다 채우지 못한
욕심꾸러미의 끈끈한 설레임도 아닌 것이.

 

詩/홍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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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픔을 내물리지 않았다.

쇠힘줄같은 슬픔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온장고에서 막 꺼낸 실론티같은 슬픔을

가만히 목구멍 너머로 흘려 넣을 뿐,

슬픔은 때로 나를

복통으로 뒹굴게도하지만

 내 피가되고

살이 되어버린 슬픔,

이제 비로서

내가 되어버린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