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남도 답사 일번지, 강진 백련사, 다산초당,달마산 미황사,두륜산 대흥사,월출산 무위사

무디따 2010. 11. 3. 21:17

 

 

 

 

 

 

 

 

 

 

 

 

 

 

 

 

 

 

 

 

 

 

 

 

 

 

 

 

 

 

사는 일이 서럽고 막막할 때 해남에 한번 가보자
무료해진 마음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
천릿길 머나먼 남쪽 끝 해남에 한번 가 보자
슬픔이든 기쁨이든 사랑이든 이별이든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솔숲을 스치는 저녁바람처럼 쓸쓸하게 해남에 가 보자

해남이란 지명에는 멀고 따듯하고 아련함이 묻어있다
지금은 아득히 사라진 목화꽃 피던 시절 같은 이야기
하교길의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들길을 달리고
장날 봇짐을 인 아낙들이 서낭당 고갯길을 넘어오는데
게으른 햇살이 내려앉아 고요하던 빈 고샅길
어느덧 저녁답,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부산할 것이다

더러는 버려진 황무지와 같은 세월이었으리라
옛적 어느 난리에 세상을 등진 선비의 무덤가에는
도래솔 한 그루 우뚝 서 홀로 세월 깊었고
이끼 낀 돌비석엔 모두 다 학생부군이라 적혀 있다
대숲바람 언저리 바다가 보이는 산정에는
버림받은 유배객의 발길이 쓸쓸하게 떠돌았다

산맥은 지나온 모든 날들이 그리운듯 길을 멈추었고
바다는 아직도 못 다한 사랑이 있어 노래를 부르니
그곳은 가난한 시인의 고향, 외로운 은자의 땅이다
나 오늘 후미진 변방의 나그네가 되었으니
연안을 떠도는 작은 나룻배에 바랑을 부리고
푸른 안개에 휩싸인 작은 섬을 찾아서 아득하게 흘러가리라.

 

 

 

 

글/ 이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