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따 2010. 10. 8. 23:02

 

 

누드 크로키/한지에 먹

 

 

 

 

황금측백나무를 안개가 수채화처럼 만들더니
햇빛이 오자 풍경이 녹아내렸다
심장이 붉은 사과처럼 향기로웠는데
어둠이 오자 연인은 귀가를 이유로 향기를 거두어 갔다

이 모든 이별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안개가 어느 날 아침 다시 현관 초인종을 누르고
벚꽃이 내년 봄 언덕에 다시 피고
새 연인이 내 인생의 어느 네거리에서 다시 악수를 청할 것임을
알고 있었음으로

이 세상은 반복되는 애도사로 채워지는 장례식장이었다
살모사가 긴 허물을 벗고 바위를 향해 기어가고
꽃사슴의 머리에서 뿔이 부러지고
하루에도 수많은 목숨들이 들꽃처럼 피었다 지는 정원이었다

이 모든 소식을
나는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죽은 시간들의 새싹이 부활하고
그 싹들이 줄기를 올려 화려한 잎으로 인생을 유혹하는 동안
슬픔의 뿌리도 그만큼 깊어지는 이야기를
먼 별에서 온 손님처럼 듣고 있었다
바다에 노을이 물들어 어둠을 더 깊게 만드는 풍경 속에서

 

 

 

詩 김백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