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Wayfaring Stranger

보성 대원사 템플스테이

무디따 2010. 8. 1. 13:43

 

 

 

 

 

 

 

 

 

 

 

 

 

 

 

 

 

 

 

 

 

 

 

 

 

 

 

 

 

 

 

 

 

어쩌자고 이렇게 처량한 여행을 꿈꿔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비 내리는 날 밤 깊은 산중,
외딴집 같은 곳에서의 뒤척이는 밤....
처마끝 낙수소리는 부질없는 회한의 정수리를 치고 
대숲에는 엉켜버린 날들의 인연이 휩쓸려다니고
먼 곳에서는 깊은 한숨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런 밤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어서
막막한 어둠의 그늘을 불러 마주앉아 있고 싶습니다.
쓸쓸하고 적막하지만 비오는 날 밤에는
빗소리가 있고 바람소리가 있고 천둥소리가 있고
둥지를 찾아가지 못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있습니다.
탄식같기도 하고 아우성같기도 하고 비명소리같기도 한 삶들
마주하고 선 모든 것들이 존재를 이끌어 가고 있지만
實相은 알 수가 없고 흠뻑 빗소리에 젖는 날들이 많습니다.
수좌는 말합니다.
빗소리에는 소리가 없다고...
소낙비가 허공 가득 쏟아진다 해도 바람과 초목과 대지가 없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것을 듣는 밝은 귀가 없다면
빗소리는 끝내 빗소리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바람소리도 천둥소리도 새들의 울음소리도
허공과 초목과 대지가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확률
수없는 관계로부터 피어난 한줄기의 빛, 緣起라고 말합니다.
緣起, 한 조각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져가는  길
그 속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비 내리는 날의  밤이 있고
고요히 웅크리고 앉은 산사의 마룻바닥이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새로운 길이 시작되듯이
미망속을 헤매이는 속인에게는 오직 모를 뿐!
가랑비에 젖어들 듯 잔잔하고
작두샘물처럼 시원하고
빈 들판에 서 있는 듯 쓸쓸한 말씀들
캄캄한 생각의 바닥 위에 
장마비 쏟아지는 날
옛절의 선방에 앉아서
마음 깊이 고요해지는 날이었습니다.

 

 

 

대원사에서/ 이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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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자고 이렇게 처량한 여행을 꿈꿔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숲에는 엉켜버린 날들의 인연이 휩쓸려다니고
먼 곳에서는 깊은 한숨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런 밤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어서
막막한 어둠의 그늘을 불러 마주앉아 있고 싶습니다.

탄식같기도 하고 아우성같기도 하고 비명소리같기도 한 삶들

그 속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비 내리는 날의  밤이 있고
고요히 웅크리고 앉은 산사의 마룻바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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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 담양 대숲, 메타세콰이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