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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표충사 表忠寺 (1)

무디따 2009. 5. 24. 17:52

 

                                                         표충사 表忠寺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載藥山 남쪽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라 했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고승인 황면黃面선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동방에서 찾다가

황록산 남쪽에 오색서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3층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절을 중창했다고 한다.

이때 흥덕왕의 아들이 나병에 걸려 전국의 약수를 찾아 헤매다가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쾌유하자

왕이 기뻐하고 대가람을 이룩한 다음 절 이름은 영정사靈井寺, 산 이름은 재약산으로 바꾸었다.

고려 문종대(1047~82)에는 당대의 고승인 혜린惠燐이 이곳에서 수도했고,

충렬왕대(1275~1308)에는〈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주석하면서 불법을 크게 중흥하니 1286년 충렬왕이 '동방제일선찰'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1839년(헌종 5)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月坡선사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에 세운 표충사表忠祠로 옮기면서

가람배치가 크게 변하고 절 이름도 표충사로 바뀌었다.

1926년 응진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埦(국보 제75호) · 3층석탑(보물 제467호) · 대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등이 있다.

 

 

수충루 : 

절의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사천왕문 :

            # 사천왕문안에 있는 사천왕 

            

 


표충사 삼층석탑 : 보물 제467호.

표충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높이 770㎝. 이 석탑은 기단 · 탑신 · 상륜부로 이루어졌으며,

폭이 좁은 지대석 위에 놓여진 기단은 단층으로 각 면에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새겨져 있다.

탑신부의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1층 옥신은 기단보다도 높아 고준한 느낌을 준다.

옥신의 각 면에는 우주만 새겨져 있고, 옥개는 약간 둔중해 보이며 모서리에는 풍령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 복발覆鉢 · 앙화仰花 · 보륜寶輪 · 보개寶蓋 · 수연水煙 등이 차례로 얹혀 있는데

나중에 후보된 것도 있으며, 그 위에는 철제 찰주擦柱가 있다.

이 석탑은 기단이 단층인 점,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에서 약간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충사 석등경남유형문화재 제14호.

석등은 절 안의 어둠을 밝힐 뿐만 아니라,

빛으로 부처님의 진리를 비춤으로써 온갖 중생을 깨우쳐 선善한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공양구供養俱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고 있다.

그러므로 석등은 언제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과 함께 법당앞에 배치된다.

이 석등은 기둥돌과 등을 넣는 화사석火舍石, 화사석을 받쳐주는 위받침돌[上臺石], 지붕돌[屋蓋石] 등을 모두 갖추었다.

다만 석등의 전체를 지탱해 주는 받침대[基壇]은 유실된 것 같다.

8각의 기둥돌은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고,

그 위에 놓인 위받침돌에는 꽃부리를 위로 향한 연꽃이 이중으로 조각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부분은 연꽃을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위아래의 받침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화사석에는 직사각형의 화창火窓이 뚫려있다.

지붕돌은 처마 끝 부분만 살짝 들어 올렸으며, 꼭대기 부분[相輪部]은 매루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위받침돌에 새겨져 있는 8장의 연꽃잎은 매우 넓고 두툼하여 시원스럽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조각의 수법이나 규모 등 전체적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나 고려 초기의 석등으로 추정된다.

 

                                                                    # 석등에 밤이 되면 불이 켜질려나...

                                                                       대신 해가 넘어가기 전에 옆으로 비친 모습이 불을 밝힌 것을 대신한다. 

 

 

표충서원  表忠書院

표충사

 

 

표충사  表忠祠

표충사

 

 

표충사  유물

1) 표충사 청동은입사향완 : 국보 제75호

표충사에 있는 고려시대 청동은입사향완. 높이 27.5㎝, 입지름 26.1㎝.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된 불교공예품의 하나로 명문이 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형태는 넓은 전이 달린 완형碗形의 몸체에 나팔형의 받침을 갖춘 고배형高杯形이다.

향완 전체에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데 넓은 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범자梵字가 새겨진 6개의 원이 있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몸체에는 역시 범자가 새겨진 4개의 원이 있으며 턱이 있는 밑부분에는 굵은 윤곽선 안에 가는 평행선으로 표현된 중판 앙련仰蓮이 입사되어 있다.

받침에는 운룡무늬[雲龍紋]가 회화적으로 시문되어 있다.

넓은 전의 뒷면에 새겨진 57자의 명문에 의해 1177년(명종 7)에 만든 것으로 용흥사龍興寺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향완은 비례가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가는 선과 굵은 선을 이용하여 문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은입사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2) 표충사 아미타삼존도

견본채색絹本彩色으로 크기는 226 X 145cm, 1885년(고종22)때의  것으로

서 있는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시립한 아미타삼존도이다.

정면을 향한 삼존은 모두 원형의 두광을 지니고 똑같은 연꽃줄기 모양의 대좌에 선 자세인데 이 주위로 오색구름이 감돌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왼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엄지와 장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이고 오른손은 내려 엄지와 장지를 맞댈 듯 멋을 낸 손모양이다.

이 시대에는 이와 같은 아미타 삼존도가 성행했다.

 

 3) 기타 유물

(1) 나무구유 

 

(2) 동물상

 

(3) 철확  :

    직경 83.7cm의 철제 솥으로

    많은 수의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국을 끓이거나 밥솥으로 사용하였던 유물로서

    당시의 사찰의 승려나 신도들의 수를 대변해주어 그 사찰의 규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표충사의 철확은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법주사의 철확보다는 작지만 당시 표충사의 규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4) 소화기

   - 일제시대의 것

 

 



출처 : 바람꽃과 솔나리
글쓴이 : ma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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