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Healing poem

[스크랩] 포플러나무 아래 이별을 묻고

무디따 2009. 4. 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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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終日) 해가 저물고도 한참
시내버스와 직행버스 열 두어 대를 그냥 보내더니
마지막 직행버스를 타고, 왔던 길로 너는 갔다.

 

네가 막차에 오르기까지 서로에게 묻고 확인했던 시간은 몇 번이며
침묵하는 동안 우린 들키지 않게 몇 번의 시계를 들여다 보았을까

진종일 너와 나의 거리 혹은 버스의 배차간격 꼭 그만큼의 거리 두고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어지러운 바람 불더니
너를 태운 버스가 산비탈 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떨어지던 빗 낱
바람에 흩어지는 눈물인 듯 날아와 살갗을 스치운다

 

네가 머리를 기대고 앉은 차창 가를 가볍게 스쳐 왔을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할까? 짙은 눈썹사이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고있거나
어두운 차창 밖 알아볼 수 없는 먼 풍경에 시선을 던져두었거나
멍하니 머리를 기대고 앉은 차창에, 빗방울들이 투신하듯 날아와
불빛을 안고 깨지는걸 바라보고 있을, 너의 서늘한 눈동자를 생각하니
와락 눈물이 쏟아진다
보냈다고 아주 보냈다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손 흔들리라 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이미 지워 버렸노라 했는데 나 아직 멀었나 보다

 

네가 떠나고 난 직후 나는, 속이 뒤집힌 사람처럼
어두운 포플러나무 아래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보다 널 쏟아내는 눈물이 더 굵다
네게 뱉어 버린 차갑고 냉정한 독한 말들이
고였다가 밑바닥까지 일순간에 뒤집어진다
흐려진 물 속, 가라앉을 것 같지 않은 말의 찌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어지럽게 부유(浮遊)하고쓰다.

 

이별의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자조 섞인 말 한마디...
어두운 포플러나무 아래 젖은 잎사귀 밑에 이별을 묻고 일어설 때
아아... 너와 마지막 밥을 먹지 못한 일 하나가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는 무엇처럼 목젖에 걸리고
네 옆자리엔 누가 앉게 될까 벌써 궁금해진다

 

나 아직 멀었나 보다.

 

詩 송해월

출처 : namaste~ _ll_
글쓴이 : 무소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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